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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FP비즈니스 모델⑤-FP의 성공을 위한 회원단체의 역할
  • 2019-05-30
  • 조회수 613

우리나라의 CFP의 역사는 ‘한국FP협회’에서 비롯되었다. 2000년 4월 사단법인으로 창립된 ‘한국FP협회(초대회장 윤병철)’는 그 해 6월 미국 CFP Board와 자격인증 업무 협약을 체결한 후 2001년 4월에 제1회 AFPK 시험을 실시하고 2002년 10월에 제1회 CFP 시험을 실시하였다. 제1회 CFP시험을 통하여 한국FP협회는 97명의 우리나라 최초 CFP시험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이후 AFPK, CFP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의 수는 2009년까지 꾸준히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CFP제도의 전성기, 2000년~2009년

우리나라 CFP제도가 초창기부터 인기를 끈 데에는 시대적 배경도 한 몫 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는 우리나라 금융의 격동기였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는 동안 수 많은 기업들이 M&A 대상이 되었는데 금융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금융회사, 특히 은행은 기업금융 일변도의 영업에서 벗어나 부유층 중심의 개인영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가속화된 종합 금융화도 CFP제도 발전에 기여했다. 종합금융화로 인해 금융권의 고유업무 영역의 장벽들이 허물어져갔다. 2003년 방카슈랑스 도입으로 은행과 증권사에서 보험상품 판매가 시작되었다. 2004년에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의 시행으로 은행에 이어 보험사 등 타 금융회사에서도 펀드 판매가 가능해졌다. 종합 금융화의 트렌드에 발맞춰 은행, 보험사, 증권사는 PB센터, FP센터, WM센터 등을 설립하며 부유층 고객들에게 금융 뿐만 아니라 세무나 부동산을 포함한 포괄적인 재무자문서비스를 제공했다.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은 GA(General Agency: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상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독립보험대리점)의 창업 러시에도 불을 붙였다. 포도재무설계, IFPK, 한국재무설계, TNV 등이 당시 대표적인 독립계 GA였다.

금융권의 일련의 변화와 함께 금융소비자들도 자산관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유례없던 자산시장의 급등락 과정을 경험한 금융소비자들은 체계적인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느꼈고 소위 ‘재테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금융권의 제도 변화와 금융소비자의 인식의 변화는 종합재무설계 능력을 갖춘 금융 전문가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였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직원들에게 국제 자격증인 CFP자격 취득을 독려하고 지원하였다. 자격증에 대한 관심은 금융권 취업을 준비중인 대학생들에게도 이어져 대학가엔 AFPK, CFP자격시험 응시 열풍이 불었다. 그 결과 2008년에는 AFPK 자격시험 응시자 수가 42,493명, 2009년에는 CFP자격시험 응시자 수가 5,919명으로 각각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 2000년대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AFPK, CFP자격의 전성기였다.


출처: 한국FPSB

자격증 사업과 회원 사업

2010년도에 접어들면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AFPK와 CFP 자격시험 응시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8년에 AFPK 자격시험은 6,066명, CFP자격시험은 572명이었다. 우리나라의 CFP자격사업이 하락세를 보이는 동안, 이웃나라 일본의 CFP자격사업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인구 수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CFP자격인증자 누계는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3,893명)보다 5배 이상이 많은 21,631명이다. 일본의 CFP자격인증자 수는 CFP자격 회원국 26개국 중에서 미국(83,106명) 다음으로 많다. 2018년 우리나라의 CFP 신규 자격인증자는 76명임에 비해 일본의 CFP 신규 자격인증자는 480명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CFP 자격인증자 수의 차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CFP자격제도 도입 초기의 양상은 양국이 비슷했다. 고객상담을 하는 FP들이 중심이 되어 회원단체를 만든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와 일본은 교육사업을 하던 사람들의 주도하에 CFP제도가 도입되었다. CFP자격이 갖고 있는 포괄적인 콘텐츠와 프로세스는 종합재무설계를 원하는 금융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CFP자격증 취득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FP협회가 출발하였다. 양국 FP협회의 주요 사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격증 사업’이고 또 하나는 ‘회원(=자격자)사업’이다. 자격증 사업으로 인한 수입은 AFPK와 CFP 자격을 취득하려는 사람들의 시험 응시료와 교재비 그리고 자격자들이 납부하는 자격 인증비로 구성된다. 회원 사업이란 FP협회와 같은 회원단체가 회원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FP협회의 주요 ‘회원(=자격자)사업’은 회원(=자격자)의 역량강화를 위한 콘텐츠 및 교육지원과 포럼이나 지부와 같은 회원간의 커뮤니티 형성 등이다. 이런 회원 사업을 통하여 FP협회는 회원(=자격자)이 계속 회비를 납부할 만한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일본FP협회는 ‘자격증 사업’과 ‘회원 사업’을 같이 하는 사업 구조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2004년 1월 한국FP협회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자격증 사업’이 한국FPSB라는 신규 단체 설립을 통하여 분리 독립되었다. 한국FPSB가 한국FP협회에서 분리될 때의 명분은 회원단체와 자격인증단체가 함께 있으면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분리해야 한다는 국제FPSB의 권고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본FP협회는 주요 수입원인 자격증 사업을 분리해서는 자격자 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 등의 이유로 국제FPSB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주FP협회 역시 일본처럼 회원단체에서 자격인증 업무를 분리시키지 않았다. 현재 호주FP협회의 CFP 자격인증자는 5,694명이다. 참고로 호주의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수준인 2,500만 명이다.

황금알을 낳던 거위의 부활

우리나라에서 CFP자격증의 인기 하락은 일면 CFP자격증의 FP 비즈니스에 대한 기여도 하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초창기 CFP자격의 위상은 자격을 취득하는 FP들에게 자부심이었고 고객에게 재무설계 서비스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CFP 비즈니스가 우리나라에서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려면 자부심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일본FP협회의 AFP자격을 취득하면 국가자격인 『파이낸셜플래닝 기능사』 2급 자격이 주어지고 CFP 자격인증자에게는 『파이낸셜플래닝 기능사』 1급 자격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이런 조건들은 CFP들의 공신력 향상을 통한 비즈니스의 영역 확장에 도움이 된다. 미국은 FP가 고객에게 투자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으로부터 직접 자문보수(Fee)를 받으려면 RIA(Registered Investment Adviser)가 되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RIA로 활동하려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실시하는 [Series 65 시험]에 합격하고 SEC에 등록해야 하는데, 미국 대부분의 주(州)에서는 CFP자격인증자들에게 [Series 65 시험]을 면제해준다. 우리나라의 AFPK, CFP 자격자들도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국FP협회와 한국FPSB가 이를 추진하는 활동의 발판이 되어야 한다.

CFP 자격자가 8만명 이상인 미국을 당장 따라하기가 무리라면, 성공적으로 FP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일본이나 호주의 사례를 충분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여러 이유로 FP 비즈니스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은 상황에선 FP협회와 같은 회원단체가 회원(=자격자)의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형태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야 더 미래에 미국처럼 현장에서 성공하는 CFP들이 양산되는 토양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FP협회와 한국FPSB의 자격증 사업과 회원 사업의 분리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황금알(자격증 사업)을 낳는 거위(한국FP협회)의 배를 너무 일찍 가른 것 같다. 그래서 황금과 거위를 모두 잃은 것은 아닐까. CFP 자격증의 위상 제고와 FP 비즈니스의 발전을 위해 ‘황금알을 낳던 거위의 부활’에 대한 논의를 한국FP협회와 한국FPSB 그리고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원문: 한국FP협회 웹진 133호)